지식과 경험의 분리
지식만 있고 경험이 없으면 공허하다
임마누엘 칸트
경험이 있으나 지식이 없으면 무모하다
공자는 지식을 경험으로 봤다고 한다.
하지만, 지식은 타인의 경험이다.
그리고 타인의 지식이 내게 온전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순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식과 경험을 분리한다.
사과도 먹어봐야 비로소 사과임을 진정 알 수 있다

“여기 사과가 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열리고, 이과에 속하고, 원산지는 발칸반도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최초 재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순우리말 ‘능금’은 ‘임금’에서 비롯됐다…(생략)…”
위에 예시로 기술한 모든 게 지식에 속한다.
심지어 농업책에 나오는 사과에 관한 지식은 책 한 권을 훌쩍 넘는다.
뿐만 아니라 사과 한 개만으로 많은 정보-과학, 시, 문학-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이걸 다 배워도 무언가 부족하다.
글의 시작부분에서 말한 칸트의 말처럼 사과를 직접 먹어보지 못한다면 공허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있게 사과는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사과의 완성은 그것을 한 입 깨물어 보고 맛과 향, 식감을 몸소 느꼈을 때 비로소 완벽해진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이에게 사과를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붉고-색깔을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둥글고, 새콤달콤한 건 먹어본 사람에게 설명 가능하다.
반대로 사과를 한 입 먹어 본 것만으로는 사과의 모든 게 완성되지는 않는다.
역사가 말하는 사과는 어마어마한 경험, 지식을 이미 쌓아 알고 먹으면 사과 맛이 배가 된다.
헬렌 켈러는 하늘색이 엄청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느낌을 끝내 품어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녀도 그것을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헬렌 켈러에게 좋다는 건 바나나를 먹고 느낀 ‘맛있다’와 하늘색의 ‘좋다’는 감정을 연결한 것이었다.
완전한 경험

지식과 경험이 합쳐지면 완전한 경험이 탄생한다.
프랑스 파리여행을 하기 전 여행지(잡지:책) 한 번 읽지 않고 간다면 시간과 돈을 들여 다른 사람보다 훨씬 질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올 것이다.
파리의 카페, 샹젤리제 거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오르세, 로댕, 오랑주리 미술관과 베르사유 궁전을 볼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 터. 거기에 그런 게 존재하는 것 조차 몰랐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한 번도 가 보지 않고 책으로만 파리를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면 디테일이 부족한 건 둘째치고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 든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짧은 여행이라도 선 지식을 갖고 다녀오면 시간이 부족해 비록 못 가 본 곳도 어느 정도 머리에 그릴 수 있다. 비슷한 곳은 유추 가능하다. 디테일이 산다.

완전한 경험 레시피: 지식90, 경험10
지식과 경험을 어느 정도 섞었을 때 지식을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50:50, 60:40 등으로 얘기하지만 필자는 지식90:경험10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지식의 축적이 경험의 축적보다 월등히 빠르다.
모두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방대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많은 지식을 갖고 조금의 경험을 더하면 된다.
충분한 지식과 조금의 경험은 넓고 변화 빠른 세상을 남들보다 더 보람있게 살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지식은 가장 돈이 덜 드는 경험이다.
그러면 남들이 한생 살 것을 같은 시간에 이생, 삼생 살 수 있다.
지식을 쌓되 그것만으로 끝나면 공허하다.
거기에 약간의 경험을 더하자. 완벽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국방일보(`25.8.19.) 조명탄 – 오계동(오즈세파 대표)